아버지를 폭행해 사망에 이르게 한 아들, 존속상해치사 집행유예 받은 변호 기록
본 사례는 저희 이현에서 직접 수임하여 처리한 사건으로, 의뢰인 특정 방지를 위해 일부 각색되었습니다. 존속상해치사 혐의로 기소되어 집행유예를 선고받은 의뢰인을 J 라고 칭하겠습니다.
집안 환경이 불우한 아이
J를 항상 따라다니던 말이었다. IMF 때 무너진 가세는 끝내 회복되지 않았고, 형편은 늘 빠듯했다.
J가 기억하는 가장 오래된 장면 속에서도 아버지는 술에 취해 있었다. 술이 들어가면 아버지는 어머니에게, 그리고 어린 남매에게 욕설과 손찌검을 했다.
폭력은 J가 태어나기도 전부터 시작됐다고 했다. 아버지가 일을 놓으면서 술은 더 늘었다. J는 유년기부터 아버지에 대한 불만을 품었지만, 그 긴 세월 동안 단 한 번도 맞서지 않았다. 맞서 봐야 더 큰 화가 돌아온다는 걸 몸으로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견디다 못한 어머니와 여동생이 집을 나오기로 한 데에는, 사실 J의 권유가 있었다. 아버지가 취해 잠든 뒤, J는 어머니와 여동생을 자기 방으로 조용히 불렀다.
“엄마, 이제 그만 나가서 살아.”
“… 그럼 너는?”
“나는 남자잖아. 괜찮아. 내가 아버지 옆에 있을게.”
“어떻게 너 혼자 두고 가. 차라리 같이 나가자.”
“엄마.”
J가 어머니의 말을 잘랐다.
"이러다 진짜 큰일 나. 엄마랑 동생이라도 먼저 나가 있어. 그래야 내가 마음이 놓여."
여동생은 울먹였고, 어머니는 한참을 망설였다. 넉넉한 형편이 아니었다. 따로 산다는 건 안 그래도 빠듯한 살림에 또 다른 짐을 얹는 일이었다. 그러나 J는 물러서지 않았다.
"돈은 내가 어떻게든 보탤게. 엄마는 엄마 몸부터 챙겨."

결국 어머니와 여동생은 짐을 쌌다. 두 사람을 먼저 안전한 곳으로 보내고, J는 그 집에 남았다. 누군가는 아버지 곁을 지켜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 후로 약 2년간 J는 직장을 다니며 집안을 건사했고, 아버지와 단둘이 살면서 매일같이 반복되는 음주와 폭언을 홀로 견뎠다.
여느 때와 같다고 생각한 그날
밤샘 근무를 마치고 돌아온 J에게 안방에서 혼자 막걸리를 마시고 있던 아버지가 보였다. J는 냉장고에서 막걸리를 더 꺼내 아버지와 마주 앉았다.
취기가 오를 무렵, J는 평소 마음에 담아두기만 했던 말을 조심스레 꺼냈다.
“아버지는 평소엔 괜찮은데, 왜 술만 드시면 가족들을 힘들게 하세요. 혹시 제가 고칠 점이 있으면 말씀해 주세요. 저도 고쳐볼게요.”
“그럼 너는 왜 사냐, 이 ○○ 새끼야. 이 △△ 새끼야. 이 □□ 새끼야.”
관계를 풀어보려는 시도에 돌아온 건 거친 욕설이었고, 아버지는 손으로 J의 머리를 여러 차례 때렸다.
‘내가 왜 서른 넘어서도 이런 욕을 듣고만 있어야 해..!’
순간적으로 격분한 J는 아버지와 뒤엉켰다. 밀치고 붙잡는 실랑이 끝에, J는 주먹으로 아버지의 가슴과 옆구리 등을 여러 차례 때렸다.
J의 키는 172cm, 몸무게는 50kg에 불과했다. 30년이 넘도록 단 한 번도 아버지에게 맞대응한 적이 없던 사람이었다. 그날의 일은 계획된 것도, 작정하고 벌인 것도 아니었다.

다툼 이후 J는 자기 방으로 들어왔다. 아버지가 지르는 으악 소리에 잠시 잠에서 깼지만, 평소에도 아버지는 술에 취하면 큰 소리를 내곤 했기에.. J는 여느 날의 술주정으로만 여겼다.
다음 날 새벽, 다시 아버지를 살피러 안방에 들어간 J는 그대로 얼어붙었다. 아버지의 몸이 차갑게 식어 있었다. 놀란 J는 히터를 켜고 이불을 덮어드렸다. 그리고 다시 확인했을 때, 숨도 맥박도 느껴지지 않았다.
아버지가 이미 숨졌다는 사실조차 받아들이지 못한 채, J는 119에 신고하고 구급대가 도착할 때까지 심폐소생술을 멈추지 않았다.
아버지의 사망 추정 시각은 J가 일어나기 2~3시간 전. J가 이상을 알아차렸을 때는 이미 손쓸 수 없는 상태였던 것이다.
존속상해치사, 무기징역도 가능한 혐의 앞에서
J에게 적용된 죄명은 존속상해치사였다. 자신의 직계존속을 다치게 해 사망에 이르게 한 죄로, 형법 제259조 제2항은 그 법정형을 무기 또는 5년 이상의 징역으로 정하고 있다.
J는 긴급체포됐다. 아버지의 장례를 치르던 중 체포된 그는, 하루아침에 아버지를 잃은 아들이자 그 죽음에 책임을 져야 하는 피고인이 되어 있었다.
구속된 J를 대신해, 어머니가 법무법인 이현 사무실 문을 열었다. 어머니는 자리에 앉자마자 눈물부터 쏟았다.
“잘못은 아들이 했지만.. 내 잘못입니다. 내가 들어가고 아들이 나오게 할 수는 없나요. 그 고통을, 우리 아들이 혼자 다 짊어졌어요.”
어머니는 그동안 가족이 견뎌온 시간을 꼭 살펴봐 달라고 거듭 부탁했다.

집행유예까지, 변호의 기록
이현이 이 사건에서 세운 변호의 방향은 분명했다. J는 공소사실을 모두 인정하고 깊이 반성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다툴 지점은 '무슨 일이 있었는가'가 아니라, '이 사건을 어떤 맥락에서 보아야 하는가'였다.
첫째, 우발적 범행.
J는 만취한 상태에서 아버지의 욕설과 폭행을 당하던 중 순간적으로 감정이 폭발했을 뿐, 처음부터 아버지를 해치려는 의도는 없었다. 왜소한 체격과 30년 가까이 단 한 번도 아버지에게 먼저 손을 댄 적이 없었던 점이 이를 뒷받침했다.
둘째, 오랜 가정폭력이라는 배경.
이현은 아버지의 음주와 폭력이 일회적인 것이 아니었음을 기록으로 입증했다. 어머니와 여동생의 진술, 그리고 J가 학창 시절 아버지에게 맞아 머리를 다쳐 병원에서 치료받은 의료 기록 등이 제출됐다. 가족이 집을 떠날 수밖에 없었던 이유, 그럼에도 J 홀로 남아 아버지를 돌봤던 사정이 함께 드러났다.
셋째, 초범이자 진지한 반성.
J는 아무 전력이 없는 초범이었고, 수사 단계부터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며 자책했다.
넷째, 사후 구호 조치.
J가 119에 신고하고 직접 심폐소생술까지 한 점은, 그가 아버지의 죽음을 가리려 한 것이 아니라 마지막까지 살리려 했음을 보여주는 정황이었다.
왜 죽일 의도가 없던 가격이 사망이라는 결과로 이어졌을까. 부검은 그 간극을 설명해 주었다.

아버지에게는 심한 간경화가 있었고, 이런 경우 비교적 작은 충격에도 출혈이 과다해질 수 있다. 부검의는 복강에서 다량의 출혈을 확인하면서도, 발견된 갈비뼈 골절은 오히려 J가 시도한 심폐소생술 때문일 수 있다고 보았다.
실제로 의학문헌에도 간경화 환자가 가벼운 외상을 입은 뒤 의료진조차 초기에는 이상을 발견하지 못하다가 뒤늦게 복강내출혈이 확인된 사례가 보고되어 있다.

의료 전문가도 놓치기 쉬운 변화를, 한밤중 집에서 J가 알아차리기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까웠다.
다섯째, 국민참여재판.
J의 사건은 가족이 견뎌온 시간과 그날의 맥락을 함께 봐야 했다. 일반 시민으로 구성된 배심원의 상식과 눈높이에서 함께 들여다봐 주기를 바랐다.

마침내 재판 당일, 국민참여재판이 열렸다. 배심원 9명은 공소사실에 대해 전원 유죄 평결을 내렸다. J가 한 일은 분명한 잘못이라는 점에 이견이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양형에 관한 의견은 달랐다. 9명 중 6명이 집행유예 의견을 냈다.
범행의 결과가 중대하다는 점을 분명히 하면서도, 오랜 가정폭력이 있었다는 배경, 우발성, 초범인 점, 사후 구호 조치 등을 두루 참작했다.

그 결과 징역 3년, 집행유예 5년, 보호관찰이 선고됐다.
징역 8년을 구형한 검사는 선고된 형이 너무 가볍다며 항소했다. 그러나 서울고등법원도 검사의 항소를 기각하며 J에 대한 형은 그대로 확정됐다.

J는 지금
출소 후 J는 아버지의 유골이 모셔진 곳을 찾았다. 죄스러운 마음에 어떤 말도 할 수 없었다고 했다.
그 뒤로 꽤 오랫동안, J는 하루도 마음 편한 날이 없었다. 매일 아버지를 떠올리며 가슴이 아팠다. 그 모습을 곁에서 지켜보던 어머니가 어느 날 J에게 말했다.
“이 죄는 평생 짊어지고 가야 해. 그리고 엄마도 죄인이야. 엄마 죄가 더 커. 그치만 사회에 보탬이 되는 사람으로 사는 게 속죄하는 길이라고 생각해.”
J는 그 말을 마음에 새겼다. 지금 J는 외삼촌이 운영하는 공장에서 새 일을 배우며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처음 해보는 일이라 서툴지만, 일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 것에 감사한다고 했다. 술을 끊었고, 마음을 다잡기 위해 교회에 다니기 시작했다.

다시 주어진 시간을, 남은 가족을 위해 정직하고 성실하게 살아가는 데 쓰겠다는 것이 그의 다짐이다.
가정 안의 갈등과 폭력은 어떤 경우에도 또 다른 폭력으로 해결될 수 없다. 그러나 한 사람의 행위를 판단할 때, 그 사람이 어떤 시간을 견뎌왔는지를 함께 들여다보는 일 또한 우리 사회와 법이 놓치지 말아야 할 몫이다.

법은 결과에 대한 판단을 하지만, 사람은 맥락 속에서 이해되어야 합니다. 저희가 한 일은 J의 30년을 법정에 옮겨 놓은 것뿐, 나머지는 그를 끝까지 믿어 준 어머니와 시민 배심원들의 몫이었습니다.
법무법인 이현 — 보통의 사람을 위한 보통의 로펌을 지향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