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의 빌려줬다고 업무상배임? 대법원 판례로 각하 받은 사례
본 글은 법무법인 이현이 실제 수임하여 해결한 사례를 바탕으로 작성되었으며, 의뢰인 개인정보 보호를 위해 일부 내용이 각색되었습니다. 사건의 결과는 개별 사실관계 및 증거 상황에 따라 달라질 수 있으며, 동일한 결과를 보장하지 않습니다.
지인 도와줬을 뿐인데 한 순간에 피의자가 됐습니다
어느 날, 경찰서에서 출석 요구서 문자가 왔습니다. 죄명란에는 “사기” 두 글자가 적혀 있었습니다.
그 아래 처음 들어보는 단어가 하나 더 있었습니다. “업무상배임”
저는 그 자리에서 한참을 멍하니 서 있었습니다. 배임이 무슨 뜻인지도 몰랐습니다. 뉴스에서나 듣던 단어였습니다…
어떻게 저에게 이런 일이 생긴 건지, 처음부터 다시 생각해봤습니다.
지인의 명의신탁 부탁을 거절하지 못했습니다
B씨를 처음 만난 건 몇 년 전이었습니다.
처음에는 그냥 아는 언니 정도였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가까워졌습니다. 혼자 계시는 분이었고 저도 여러 가지 일을 도와드리다 보니 자연스럽게 가족 같은 사이가 됐습니다. B씨도 저를 딸처럼 대해줬고요.
그러다 B씨가 조심스럽게 부탁을 해왔습니다.
"나 지금 부동산에 빚 추심이 들어올 것 같아. 아파트 명의를 잠깐 다른 사람 앞으로 돌려놔야 할 것 같은데."
채권자가 부동산을 압류하기 전에 명의를 다른 사람 앞으로 옮겨두자는 이야기였습니다. B씨 주변 가족들한테 먼저 부탁했는데 다들 거절했다고 했습니다. 저는 잠깐 고민했지만 그냥 도와드려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별 거 아니겠지. 나중에 다시 돌려드리면 되지.
지금 생각하면 그때 좀 더 신중했어야 했는데, 당시에는 단순히 잠깐 빌려주는 것이라고만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아파트 소유권이 제 딸 명의로 이전됐습니다.
그 후로 현금 보관까지 맡아줬습니다

명의 이전이 끝나고 얼마 후 B씨가 또 부탁을 해왔습니다.
"현금도 좀 맡아줄 수 있어? 통장에 놔두면 같이 묶일 수 있어서."
이번엔 돈이었습니다. 보증금을 돌려줘야 하는데 그 돈이 계좌에 있으면 함께 압류당할 수 있다면서요. 재산세 납부나 다른 비용을 처리하는 데도 필요하다고 했습니다.
저는 그 돈을 현금으로 받아서 보관했습니다. B씨가 필요하다고 할 때마다 꺼내서 썼습니다. 재산세도 제 계좌에서 납부했고 캡처 자료도 다 남겨뒀습니다.
카카오톡으로 항상 얘기를 나눴습니다. "이번 달 재산세 납부했어요", "보증금 어디로 보낼까요" 같은 내용들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습니다. B씨 목소리가 담긴 음성 파일도 있었습니다. "빨리 명의로 옮겨가"라고 재촉하던 목소리까지요.
2024년 말 갑자기 B씨 태도가 바뀌었습니다.
처음엔 그냥 예민한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내가 언제 해달라고 했냐", "돈을 빼돌렸잖아"라는 말들이 나오기 시작하더니 얼마 후 고소장이 접수됐습니다. 저는 어이가 없었습니다. 모든 게 B씨가 부탁한 일이었는데.
사기와 업무상배임으로 고소당했습니다
고소장 내용은 이랬습니다.
피의자는 처음부터 금전만을 착복할 의사만 있었을 뿐, 금전을 보관 및 반환할 의사나 능력이 없음에도 고소인을 속여 수천만 원을 지급받아 사기.
업무상배임 혐의도 함께였습니다.
고소인 명의의 아파트에 대해 소유명의를 이전해 두되, 필요시 즉시 돌려주겠다는 약정을 기초로 하여 명의 이전 및 원복 절차를 처리함에 있어 임무에 위배, 피의자의 딸로 하여금 시가 미상의 아파트에 대한 재산상 이익을 취득하게 하고 고소인에게 동액 상당의 재산상 손해를 가하여 업무상배임.
저는 이 문장들을 몇 번이나 다시 읽었습니다. 읽을수록 더 억울했습니다.
다른 대형 로펌 두 곳에도 상담을 받아봤습니다. 두 곳 다 "방어 가능성이 있다"는 답변을 들었습니다. 틀린 말은 아니었을 겁니다.
그런데 저는 그 말을 듣고도 아무것도 해결된 것이 없었습니다. 그 무렵 스트레스로 인해 몸 상태도 많이 나빠져 있었습니다. 저한테 필요한 건 단순히 가능성 여부가 아니었습니다.
수사관 앞에 혼자 서는 순간이 두려웠고, 그 자리에 누군가 직접 함께 있어주길 원했습니다. 지인을 통해 알게 된 법무법인 이현에 찾아오게 되었습니다.
변호사님이 사건을 처음 들여다보시면서 던지신 질문이 있었습니다.
"본인이 고소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사람이었나요?"
명의신탁, 업무상배임이 되지 않는 이유
무슨 말인지 몰랐습니다. 저는 그냥 부탁을 들어줬을 뿐인데, 사무를 처리하는 사람이라는 게 무슨 뜻인지 감이 잡히지 않았습니다.
변호사님이 차근차근 설명해 주셨습니다.
업무상배임죄가 성립하려면 전제가 하나 있는데, 그 사람이 애초에 타인의 사무를 맡아서 처리하는 지위에 있어야 한다는 겁니다. 회사 직원이 회사 돈을 빼돌리거나, 대리인이 위탁받은 일을 저버리는 것처럼요. 범죄 이름에 업무라는 말이 붙는 이유가 거기 있다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의뢰인은 B씨의 직원도, 수임인도 아니잖아요. 부탁을 받아서 이름을 빌려준 거지, B씨 일을 대신 처리해주는 관계가 아니에요."
명의신탁이라는 게 쉽게 말하면 이름만 빌려주는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실제 주인은 B씨인데 법적인 명의만 제 딸 앞으로 돼 있는 거라고요. 그 관계에서 명의를 빌려준 사람은 빌려달라 한 사람의 대리인이 아니라는 겁니다.
대법원도 같은 판단을 내린 적 있다면서 판결문을 보여주셨습니다.
명의신탁약정이 있는 경우, 수탁자는 신탁자와의 관계에서도 신탁 부동산의 소유권을 완전히 취득하고, 신탁자에 대하여 명의신탁약정의 무효로 인한 부당이득반환의무만을 부담할 뿐이다. 수탁자는 타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자의 지위에 있지 아니하다.
-대법원 2001도2722 판결
그러니까, 배임죄 자체가 처음부터 성립하지 않는 구조였다는 겁니다.
경찰 조사 전, 변호인의견서를 제출했습니다
변호사님은 경찰 조사 전에 의견서를 먼저 제출하겠다고 하셨습니다.
제가 무심코 보관해 둔 것들이 그때부터 증거가 됐습니다. B씨가 저한테 먼저 명의 이전을 요청했다는 카카오톡 대화, "빨리 옮겨가"라고 재촉하던 음성 파일, 재산세 납부 캡처, 보증금 반환 내역. 별생각 없이 남겨뒀던 것들인데 변호사님은 그게 전부 의미 있다고 하셨습니다.

한 가지 더 있었습니다. 저는 어느 시점부터 이 일에서 손을 떼고 싶어서 B씨한테 관리를 그만하겠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B씨는 계속 부탁을 했습니다. 그 카카오톡도 남아 있었습니다.
변호사님은 이게 오히려 중요한 증거라고 하셨습니다. 제가 자발적으로 한 게 아니라 B씨가 끝까지 매달렸다는 사실이 기록으로 남아 있었으니까요.
처음부터 빼돌릴 생각이 있었던 사람이라면 이런 기록을 남기지 않는다는 것, 대법원 판례상 명의신탁 수탁자는 배임죄의 주체가 될 수 없다는 것. 이 두 가지를 의견서에 담아 수사관이 조사 전 미리 읽을 수 있도록 했습니다.
조사에는 변호사님이 직접 동행해 주셨습니다. 수사관이 어떤 방향으로 물어보는지 옆에서 지켜보시면서 제가 말을 잘못 꺼내려 할 때마다 정리해 주셨습니다. 혼자였으면 어디서부터 어떻게 말해야 할지도 몰랐을 것 같습니다.
결과 : 사기 혐의없음, 업무상배임 각하
수사결과통지서가 왔습니다.
사기: 증거불충분 혐의없음, 업무상배임: 각하.

검찰로 넘어가지 않고 경찰 단계에서 끝났습니다.
통지서를 받던 날 오랜만에 제대로 숨을 쉬었습니다. 억울하다는 감정이 오래 남았지만, 적어도 더 이상 수사를 받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에 안도할 수 있었습니다.
명의신탁 부탁을 받았다면 이것만은 확인하세요
저는 이 일을 겪고 나서야 알게 된 것들이 있습니다.
저는 그냥 도움을 줬다고 생각했는데, 나중에 보면 그게 전부 증거가 됩니다. 내가 부탁을 받아서 한 건지, 아니면 내가 먼저 나선 건지. 현금을 왜 보관했는지, 그 돈으로 뭘 했는지. 돌려줄 생각이 있었는지 없었는지.
모든 게 기록으로 말합니다.
① 명의 이전을 먼저 요청한 쪽이 상대방임을 보여주는 대화 기록
② 현금을 왜 보관하게 됐는지, 어디에 썼는지 알 수 있는 납부 내역
③ 상대방이 지속적으로 부탁했다는 사실이 남아 있는 메시지나 녹취
④ "돌려드리겠다"는 내 의사가 드러나는 대화
⑤ 명의 이전 이후 실제로 비용을 처리한 내역
그런데 기록만으로는 부족합니다. 그 기록을 어떻게 꺼내느냐가 다음 문제입니다.
수사관은 내 편이 아닙니다. 고소인 측 주장을 들고 온 사람들입니다. 거기서 혼자 "저는 그냥 부탁을 들어줬을 뿐이에요"라고 말해봤자 그 말이 어떻게 기록될지, 어떤 방향으로 쓰일지 알 수 없습니다.
변호사님이 옆에 계셨기 때문에 제 말이 제대로 전달됐습니다. 제가 잘못 꺼내려는 말을 그 자리에서 정리해 주셨고, 미리 제출한 의견서 덕분에 수사관이 어떤 시각으로 조사에 임하는지도 달랐습니다.
결과가 먼저 바뀐 게 아닙니다. 그 자리에 누군가 함께 있었다는 사실이 먼저였습니다.
비슷한 상황에 놓이셨다면, 혼자 버티려 하지 마시고 도움을 청하시길 바랍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명의신탁을 해줬으면 업무상배임으로 처벌받을 수 있나요?
명의신탁만으로는 업무상배임죄가 성립하지 않습니다. 업무상배임죄는 타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지위에 있는 사람이 그 임무에 위배하는 행위를 했을 때 성립합니다. 그런데 명의신탁 수탁자는 신탁자의 사무를 처리하는 자가 아닙니다. 이름을 빌려준 것 자체는 형사상 배임죄를 구성하지 않습니다. 다만 구체적인 사실관계에 따라 판단이 달라질 수 있으므로 반드시 전문가와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Q. 지인 부탁으로 현금을 보관했는데 사기죄가 될 수 있나요?
사기죄가 성립하려면 처음부터 돈을 편취할 의사, 즉 속여서 빼앗으려는 고의가 있어야 합니다. 상대방의 부탁을 받아 현금을 보관하게 된 경위, 실제 사용 내역, 반환 의사를 보여주는 대화 기록이 있다면 편취 의사 자체를 부정할 수 있습니다. 특히 재산세 납부, 보증금 반환 등 구체적인 비용 처리 내역은 보관 목적의 정상성을 입증하는 핵심 증거가 됩니다.
Q. 경찰 조사 전에 변호인의견서를 내면 실제로 효과가 있나요?
효과가 있습니다. 수사 초기에 피의자 측의 법리적 입장을 명확히 제시하면 수사 방향 자체를 바꿀 수 있습니다. 조사 전 의견서가 없으면 수사관은 고소인 측 주장만 기반으로 수사를 진행하게 됩니다. 특히 혐의 자체가 법적으로 성립하지 않는 구조라면 조사 전에 그 논리를 먼저 전달하는 것이 결정적입니다. 경찰 단계에서 불송치를 받지 못하면 검찰 단계에서 뒤집기는 훨씬 어렵습니다.
Q. 고소를 취하하지 않아도 불송치가 가능한가요?
가능합니다. 불송치는 경찰이 수사 결과 혐의가 없거나 증거가 불충분하다고 판단할 때 내리는 결정으로, 고소 취하와는 별개입니다. 고소인이 끝까지 고소를 유지하더라도 수사관이 혐의없음으로 판단하면 불송치 처분이 가능합니다. 이 사건처럼 법리상 혐의 성립 자체가 어렵고 피의자 측 증거가 충분한 경우에는 고소 취하 없이도 경찰 단계에서 사건이 종결될 수 있습니다.
